바쁘지 않은데도 늘 늦었다고 느끼는 감각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어떤 선택은 즉각적인 결과를 남기고, 어떤 선택은 큰 의미 없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선택은 끝났고, 다른 길로 들어섰다는 사실도 분명한데, 선택하지 않았던 가능성은 계속 마음 한쪽에 남아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가능성은 특정한 순간마다 조용히 떠오른다. 이 글은 그 선택을 다시 하자는 글도, 후회를 정리하자는 글도 아니다. 왜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실제로 선택한 결과보다 더 오래 머무는지, 그 감각의 구조를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선택은 하나의 방향을 확정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가능성을 닫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선택한 결과에 집중한다. 지금의 삶, 지금의 위치, 지금의 상태를 기준으로 선택을 평가한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에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다른 가능성들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명확한 결과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오래 마음속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결과는 끝나지만 가능성은 끝나지 않는다

선택한 결과에는 끝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성공이든 실패든 어느 정도 정리된다. 감정도 함께 소모되고, 그 선택은 과거의 사건으로 이동한다. 반면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은 결과를 갖지 않는다. 잘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고, 경험으로 소모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 가능성은 끝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끝나지 않은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끝난 일보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 더 오래 머문다.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은 바로 이 지점에 머문다. 결과가 없기 때문에 평가도 없고, 평가가 없기 때문에 정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가능성은 질문의 형태로 남는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상태가 주는 지속성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오래 남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끝까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확인된 사실보다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 더 민감하다. 확인된 결과는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가능성은 판단할 기준 자체가 없다.

이 때문에 가능성은 시간이 지나며 구체성을 잃는 대신, 더 넓은 의미를 갖게 된다. 실제로 어떤 삶이 펼쳐졌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과는 다른 어떤 상태였을 것이라는 막연한 감각만 남는다. 이 막연함은 쉽게 부정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유지된다.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남기는 감각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계속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것이 반드시 더 나은 선택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가능성은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상기시키기 때문에 남는다. 우리는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애매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 거리감 속에서 가능성은 평가되지 않은 채 남아, 언제든 다시 떠오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후회는 선택한 결과에 대한 감정이지만, 여기서 남는 감각은 후회와도 다르다. 그것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의 여백에 대한 인식에 가깝다.

현재를 비추는 배경으로서의 가능성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은 과거에 머무르기만 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를 비추는 배경처럼 작용한다. 지금의 선택을 바라볼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때의 가능성을 떠올린다. 그래서 현재의 삶은 단순히 선택한 결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 또한 현재의 감각을 형성하는 요소가 된다.

이 가능성은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시 선택하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의 상태를 상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현재는 더 분명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더 복잡해지기도 한다.

가능성을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을 반드시 정리해야 할 필요는 없다. 모든 선택이 명확한 해답을 남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가능성은 그대로 남아 있어도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능성은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를 다시 인식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계속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것이 아직 의미를 잃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의미는 다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감각으로는 살아 있다. 이 글은 그 가능성을 없애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왜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지, 그 구조를 천천히 따라가 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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