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없이 지나간 하루가 마음에 남는 이유

하루를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오늘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려다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사건도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도 아니다. 분명 하루를 보냈는데, 그 하루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이상한 일은 그런 날이 오히려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을 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날의 공기나 몸의 감각, 마음의 리듬은 묘하게 오래 남는다. 이 글은 그런 하루를 의미 있는 날로 규정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설명 없이 지나간 하루가 왜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지, 그 감각의 구조를 천천히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우리는 하루를 설명할 수 있을 때 안도한다. 회의가 있었고, 약속이 있었고, 마무리한 일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하루는 정리된 느낌을 준다.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하루가 제자리에 놓였다는 신호처럼 작동한다. 반대로 설명되지 않는 하루는 어딘가 빠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하루를 대충 넘기거나, 특별할 것 없는 시간으로 분류하기 쉽다. 하지만 기억은 늘 그런 분류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은 하루가 오히려 오래 남는 이유는, 그 하루가 비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었기 때문이다.

설명이 사라질 때 드러나는 감각

설명할 수 있는 하루는 사건을 중심으로 기억된다.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가 기억의 기준이 된다. 이 기준은 명확하지만, 동시에 많은 감각을 밀어낸다. 하루의 분위기나 몸의 상태, 생각이 흘렀던 순간들은 사건 뒤편으로 물러난다.

반면 설명되지 않는 하루에는 대표할 만한 사건이 없다. 그래서 감각이 전면으로 나온다.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느슨해졌던 순간, 창밖을 오래 바라보던 시간, 생각이 흘렀다 멈췄다 하던 리듬이 그대로 남는다. 이 감각들은 말로 묶이지 않지만,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결을 만든다. 그래서 설명은 없지만, 기억은 또렷하다.

요약되지 않은 시간이 남기는 여운

우리는 하루를 요약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요약이 가능할수록 하루는 빠르게 정리된다. 반대로 요약되지 않는 시간은 정리되지 않은 채 남는다. 무엇을 했는지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없을 때, 그 하루는 쉽게 접히지 않는다.

요약되지 않은 시간은 기억 속에서 결과가 아니라 흐름으로 남는다. 그래서 떠올릴 때도 명확한 장면보다 분위기와 상태가 먼저 떠오른다. 이 여운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은 닫히지 않은 채로 유지된다.

평가를 벗어난 하루의 성격

설명 없이 지나간 하루는 평가하기 어렵다. 잘 보냈다고 말하기도, 낭비했다고 단정하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그 하루는 성공이나 실패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 평가 불가능성이 기억을 오래 붙잡아 두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평가되지 않은 하루는 수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기억을 떠올릴 때, 더 나아 보이게 다듬거나 불편한 부분을 덜어낸다. 하지만 설명되지 않은 하루에는 그런 편집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날은 있었던 그대로 남는다. 이 ‘그대로 남음’이 기억을 오래 유지시킨다.

머무름으로 경험된 시간

설명 없이 지나간 하루는 이동보다 머무름에 가까운 시간이다. 어디로 가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들고, 다음 단계에 대한 기대도 희미해진다. 이때 우리는 현재에 더 오래 머문다.

머무름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지 않는다. 대신 감각과 함께 쌓인다. 그래서 나중에 돌아보면 무엇을 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아도, 그때의 상태는 선명하게 재현된다. 설명되지 않은 하루가 하나의 장면처럼 남는 이유다.

설명되지 않은 하루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

설명 없이 지나간 하루가 마음에 남는다고 해서, 그 하루가 더 중요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하루는 다른 방식으로 지나간 시간이었다. 성취나 결과로는 남지 않았지만, 감각으로는 충분히 경험된 하루였다.

어쩌면 설명되지 않은 하루가 오래 남는 이유는, 우리가 그날을 굳이 해석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엇이었는지를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은 닫히지 않았다. 이 글은 하루를 설명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설명 없이 지나간 하루가 왜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지, 그 구조를 천천히 따라가 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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