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목적이 아닌 시간이 되어버릴 때
하루를 되돌아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급하게 처리한 일도 없었고, 누군가와 감정을 크게 소모할 만한 대화도 없었다. 이동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몸을 혹사한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하루가 끝날 즈음, 몸과 마음에는 분명한 피로가 남아 있다. 단순히 졸리거나 쉬면 해결될 것 같은 피곤함과는 다르다. 이유를 설명하려 하면 말이 막히고, 무엇 때문에 지쳤는지 떠올릴 수 없다. 이 글은 그 피로를 없애는 방법을 제시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아무 일도 없었던 날에 왜 피로가 남는지, 그 감각의 구조를 천천히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우리는 피로를 대개 사건과 연결해 이해한다. 많이 움직였거나, 신경 쓸 일이 많았거나,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일을 겪었을 때 피곤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설명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타당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느낀 날의 피로 앞에서는 이 논리가 쉽게 무너진다. 무엇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는데도 지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피로는 종종 컨디션 문제나 기분 탓으로 간단히 처리된다. 하지만 그런 설명만으로는 이 감각이 반복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은 채 유지될 때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하루는 에너지를 명확하게 사용하지 않은 하루이기도 하다. 해야 할 일은 있었지만 깊이 몰입하지 않았고, 쉬는 시간도 있었지만 온전히 쉬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에너지는 하루 종일 유지되었지만, 분명한 방향 없이 흩어져 있었다. 이 상태에서의 피로는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쓰이지 않은 채 계속 유지되면서 생긴다. 에너지는 사용될 때보다 보류될 때 더 무겁게 느껴진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에너지는 계속 대기 중인 상태로 남아 있고, 그 대기는 서서히 부담이 된다. 그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하루가 끝났을 때는 마치 계속 무언가를 참고 있었던 것처럼 지친다. 이 피로는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활동하지 못한 상태가 누적된 결과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