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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없이 지나간 하루가 마음에 남는 이유

하루를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오늘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려다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사건도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도 아니다. 분명 하루를 보냈는데, 그 하루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이상한 일은 그런 날이 오히려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을 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날의 공기나 몸의 감각, 마음의 리듬은 묘하게 오래 남는다. 이 글은 그런 하루를 의미 있는 날로 규정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설명 없이 지나간 하루가 왜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지, 그 감각의 구조를 천천히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우리는 하루를 설명할 수 있을 때 안도한다. 회의가 있었고, 약속이 있었고, 마무리한 일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하루는 정리된 느낌을 준다.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하루가 제자리에 놓였다는 신호처럼 작동한다. 반대로 설명되지 않는 하루는 어딘가 빠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하루를 대충 넘기거나, 특별할 것 없는 시간으로 분류하기 쉽다. 하지만 기억은 늘 그런 분류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은 하루가 오히려 오래 남는 이유는, 그 하루가 비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었기 때문이다. 설명이 사라질 때 드러나는 감각 설명할 수 있는 하루는 사건을 중심으로 기억된다.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가 기억의 기준이 된다. 이 기준은 명확하지만, 동시에 많은 감각을 밀어낸다. 하루의 분위기나 몸의 상태, 생각이 흘렀던 순간들은 사건 뒤편으로 물러난다. 반면 설명되지 않는 하루에는 대표할 만한 사건이 없다. 그래서 감각이 전면으로 나온다.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느슨해졌던 순간, 창밖을 오래 바라보던 시간, 생각이 흘렀다 멈췄다 하던 리듬이 그대로 남는다. 이 감각들은 말로 묶이지 않지만,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결을 만든다. 그래서 설명은 없지만, 기억은 또렷하다. 요약되지 않은 시간이 남기는 여운 우리는 하루를 요약하려...

아무 이유 없이 집중이 흐트러지는 날

아무 이유 없이 집중이 흐트러지는 날이 있다. 해야 할 일은 분명하고, 환경도 나쁘지 않다. 충분히 잠을 잤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생각은 자꾸 옆으로 새고, 시선은 화면 위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보려 해도 선명한 원인은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은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을 제시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아무 이유 없이 집중이 흩어지는 날이 왜 생기는지, 그 감각의 구조를 천천히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우리는 보통 집중의 문제를 환경이나 의지의 문제로 설명한다. 주변이 시끄럽거나, 마음이 느슨해졌거나, 충분히 각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설명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지만, 모든 경우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특히 아무것도 크게 잘못되지 않았는데도 집중이 되지 않는 날 앞에서는 이 설명이 힘을 잃는다. 그날의 흐트러짐은 단순한 산만함이라기보다, 다른 종류의 상태처럼 느껴진다. 집중이 작동하지 않는 날의 공통된 감각 아무 이유 없이 집중이 흐트러지는 날에는 공통된 감각이 있다. 머릿속이 소란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비어 있는 느낌에 가깝다. 생각은 많지 않은데, 그렇다고 하나의 생각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다른 생각으로 옮겨가며,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이 상태에서는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는 느낌도 희미해진다.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도,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집중하지 못했다는 자각은 뒤늦게 찾아온다. 그래서 하루를 돌아볼 때, 유난히 허무한 인상이 남는다. 집중이 아닌 ‘대기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집중이 흐트러지는 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완전히 쉬고 있는 것도, 본격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 놓여 있다. 언제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작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다. 이 상태는 집중의 실패라기보다, 대기 상태에 가깝다. 대기 상태에서는 에너지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방향을 갖지 못한다. 무...

익숙한 공간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질 때

어느 날 문득, 늘 다니던 길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건물은 그대로 있고, 풍경도 어제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어색해지고,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된다. 익숙해야 할 공간이 갑자기 처음 와본 곳처럼 느껴지는 이 감각은 설명하기 어렵다.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고, 길을 잘못 든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낯섦을 해소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익숙한 공간이 왜 어느 순간부터 낯설게 느껴지는지, 그 인식의 변화를 천천히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공간은 보통 안정감을 준다. 자주 드나드는 장소, 반복해서 머물렀던 공간은 우리에게 방향 감각뿐 아니라 심리적인 기준점이 된다. 그래서 익숙한 공간은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배경처럼 존재한다. 그런데 그 배경이 갑자기 전면으로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다. 공간이 더 이상 배경으로 남아 있지 않고, 하나의 대상처럼 인식될 때, 우리는 낯섦을 느낀다. 공간이 배경에서 대상이 되는 순간 익숙한 공간이 낯설어지는 첫 번째 계기는, 그 공간을 더 이상 자동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될 때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동하던 동선이 갑자기 의식된다. 발걸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관찰하게 된다. 이때 공간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배경은 인식되지 않지만, 대상은 인식된다. 공간이 대상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곳을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게 된다. 익숙함은 사라지고, 낯섦이 대신 자리를 잡는다. 이 변화는 공간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생긴다. 내부 상태가 공간 인식을 바꿀 때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외부보다 내부에 있는 경우가 많다. 몸의 리듬이나 마음의 상태가 이전과 달라졌을 때, 같은 공간도 다르게 인식된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풍경이 유난히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공간이 변해서가 아니라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아졌거나, 판단을 ...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일상에 스며드는 과정

특별히 걱정할 만한 일이 없는데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날이 있다. 분명 큰 문제는 없고, 당장 해결해야 할 일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하루의 바닥처럼 깔려 있다. 그 불안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오지도 않고, 명확한 형태를 갖지도 않는다. 대신 일상의 틈 사이로 조용히 스며든다. 이 글은 그 불안을 없애거나 다루는 방법을 말하려는 글이 아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어떻게 일상 속에 자리 잡게 되는지, 그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우리는 보통 불안을 원인과 함께 떠올린다.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거나, 불확실한 상황에 놓였을 때 불안해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불안은 비교적 설명 가능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말할 수 있고, 그 문제가 해결되면 불안도 줄어든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불안은 다르다. 원인을 정확히 짚을 수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지도 않다. 이 불안은 설명되지 않은 채로 일상에 스며든다. 불안이 갑자기 생기지 않는 이유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축적된다. 작은 긴장, 사소한 걱정, 미뤄둔 판단들이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쌓인다. 각각은 불안이라고 부르기에는 미미하지만, 함께 모이면 분명한 감각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불안은 특정 사건에 묶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무엇 때문에 그런지 말하지 못한다. 이미 지나간 일들, 아직 오지 않은 일들,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뒤섞이며 불안은 배경처럼 형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안은 일상과 분리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일부가 된다. 일상 속에 흡수되는 불안의 형태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은 눈에 띄는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생활의 리듬 속에 섞인다. 평소보다 집중이 잘 되지 않거나, 사소한 일에 쉽게 지치거나, 이유 없이 마음이 급해지는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불안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컨디션 ...

아무 일도 없던 날이 오래 남는 이유

어떤 생각들은 말로 꺼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점점 더 커진다. 처음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소하게 느껴졌던 생각이다. 설명하기 애매하거나, 말해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넘겼을 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존재감을 키운다. 누군가에게 전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생각은 마음속에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이 글은 말하지 않은 생각을 반드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말해지지 않은 생각이 왜 점점 더 크게 느껴지는지, 그 인식의 구조를 천천히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우리는 흔히 말로 꺼낸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입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 생각에 무게를 부여한다고 믿는다. 반대로 말하지 않은 생각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말해지지 않은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내부에서 계속 반향을 일으킨다. 그래서 어느 순간, 말하지 않은 생각이 말한 생각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말하지 않기로 한 선택의 흔적 말하지 않은 생각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대개 어떤 이유로 그 생각을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상황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거나,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혹은 말해봤자 이해받기 어렵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선택은 당시에는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말하지 않기로 한 순간, 그 생각은 외부로 나가는 길을 잃는다. 대신 내부에서 반복된다. 말하지 않은 이유, 말했을 때의 반응을 상상하는 과정, 그리고 결국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생각을 계속 되돌려 보게 만든다. 이 반복이 생각의 크기를 키운다. 검증되지 않은 생각의 증폭 말로 꺼내진 생각은 반응을 만난다. 동의든 반박이든, 어떤 형태로든 외부의 검증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생각은 다듬어지거나 작아진다. 반면 말하지 않은 생각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검증되지 않은 생각...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순간이 있다. 새로운 정보도 아니고, 누군가 처음 알려준 이야기도 아니다. 머리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틀리지 않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감각이 올라온다.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납득되지 않는 상태다. 이 글은 그 간극을 메우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왜 어느 순간부터 무겁게 느껴지는지, 그 인식의 구조를 조용히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우리는 흔히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을 같은 단계로 생각한다. 알고 있다면 이미 정리된 것이고, 더 이상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떤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삶의 특정 시점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미 알고 있던 말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사실이 새로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해와 수용 사이의 시간차 이해는 비교적 빠르게 이루어진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머릿속에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수용은 다르다. 수용은 감각의 영역에 가깝고, 시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어떤 사실은 이해한 순간에는 가볍게 지나가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무게를 갖는다. 이 시간차는 우리가 그 사실을 실제로 살아내기 시작할 때 드러난다.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말들이, 현실의 선택과 맞닿는 순간부터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 갑자기 어려운 과제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삶의 조건이 바뀌었을 때 드러나는 저항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사실이 요구하는 조건이 지금의 삶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도 큰 변화가 필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사실을 ...

계획이 없던 시기가 유난히 또렷하게 기억되는 이유

돌이켜보면 이상한 기억들이 있다. 당시에는 분명 아무 계획도 없었고, 무엇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감각조차 희미했던 시기였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하면 막막해지지만, 그 시기의 공기나 리듬은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무엇을 성취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때의 상태는 또렷하다.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기억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없던 시기는 쉽게 흐려지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 글은 계획의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계획이 없던 시간이 왜 기억 속에서 다른 밀도를 갖게 되는지, 그 감각의 구조를 천천히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우리는 보통 계획이 있었던 시기를 의미 있는 시간으로 분류한다.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해 움직였으며, 결과로 남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던 시간이다. 반대로 계획이 없던 시기는 공백처럼 취급된다. 그 시간은 방향을 잃은 채 흘러간 것으로 평가되기 쉽다. 하지만 기억은 늘 그런 평가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계획이 없던 시기가 더 또렷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그 시간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계획이 사라지며 현재가 전면에 놓일 때 계획이 있을 때 우리는 늘 앞을 본다. 다음 일정, 다음 단계, 다음 목표가 현재를 밀어낸다. 지금 이 순간은 곧 지나갈 통과 지점처럼 취급되고, 그 자체로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계획이 촘촘할수록 현재는 얇아진다. 하루는 빠르게 지나가고, 나중에 돌아보면 결과만 남는다. 반면 계획이 없을 때 현재는 전면에 놓인다.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시선은 자연스럽게 지금에 머문다.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이 약해지고, 그 대신 지금의 감각이 또렷해진다. 빛의 변화, 몸의 컨디션, 생각의 흐름 같은 것들이 계획에 가려지지 않고 그대로 인식된다. 이 상태에서의 시간은 사건으로는 빈약해 보여도, 감각의 층위에서는 오히려 밀도가 높다...

기다림이 목적이 아닌 시간이 되어버릴 때

하루를 되돌아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급하게 처리한 일도 없었고, 누군가와 감정을 크게 소모할 만한 대화도 없었다. 이동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몸을 혹사한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하루가 끝날 즈음, 몸과 마음에는 분명한 피로가 남아 있다. 단순히 졸리거나 쉬면 해결될 것 같은 피곤함과는 다르다. 이유를 설명하려 하면 말이 막히고, 무엇 때문에 지쳤는지 떠올릴 수 없다. 이 글은 그 피로를 없애는 방법을 제시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아무 일도 없었던 날에 왜 피로가 남는지, 그 감각의 구조를 천천히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우리는 피로를 대개 사건과 연결해 이해한다. 많이 움직였거나, 신경 쓸 일이 많았거나,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일을 겪었을 때 피곤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설명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타당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느낀 날의 피로 앞에서는 이 논리가 쉽게 무너진다. 무엇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는데도 지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피로는 종종 컨디션 문제나 기분 탓으로 간단히 처리된다. 하지만 그런 설명만으로는 이 감각이 반복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은 채 유지될 때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하루는 에너지를 명확하게 사용하지 않은 하루이기도 하다. 해야 할 일은 있었지만 깊이 몰입하지 않았고, 쉬는 시간도 있었지만 온전히 쉬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에너지는 하루 종일 유지되었지만, 분명한 방향 없이 흩어져 있었다. 이 상태에서의 피로는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쓰이지 않은 채 계속 유지되면서 생긴다. 에너지는 사용될 때보다 보류될 때 더 무겁게 느껴진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에너지는 계속 대기 중인 상태로 남아 있고, 그 대기는 서서히 부담이 된다. 그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하루가 끝났을 때는 마치 계속 무언가를 참고 있었던 것처럼 지친다. 이 피로는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활동하지 못한 상태가 누적된 결과에 가깝다. ...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피곤해지는 이유

하루를 되돌아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급하게 처리한 일도 없었고, 누군가와 감정을 크게 소모할 만한 대화도 없었다. 이동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몸을 혹사한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하루가 끝날 즈음, 몸과 마음에는 분명한 피로가 남아 있다. 단순히 졸리거나 쉬면 해결될 것 같은 피곤함과는 다르다. 이유를 설명하려 하면 말이 막히고, 무엇 때문에 지쳤는지 떠올릴 수 없다. 이 글은 그 피로를 없애는 방법을 제시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아무 일도 없었던 날에 왜 피로가 남는지, 그 감각의 구조를 천천히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우리는 피로를 대개 사건과 연결해 이해한다. 많이 움직였거나, 신경 쓸 일이 많았거나,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일을 겪었을 때 피곤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설명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타당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느낀 날의 피로 앞에서는 이 논리가 쉽게 무너진다. 무엇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는데도 지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피로는 종종 컨디션 문제나 기분 탓으로 간단히 처리된다. 하지만 그런 설명만으로는 이 감각이 반복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은 채 유지될 때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하루는 에너지를 명확하게 사용하지 않은 하루이기도 하다. 해야 할 일은 있었지만 깊이 몰입하지 않았고, 쉬는 시간도 있었지만 온전히 쉬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에너지는 하루 종일 유지되었지만, 분명한 방향 없이 흩어져 있었다. 이 상태에서의 피로는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쓰이지 않은 채 계속 유지되면서 생긴다. 에너지는 사용될 때보다 보류될 때 더 무겁게 느껴진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에너지는 계속 대기 중인 상태로 남아 있고, 그 대기는 서서히 부담이 된다. 그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하루가 끝났을 때는 마치 계속 무언가를 참고 있었던 것처럼 지친다. 이 피로는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활동하지 못한 상태가 누적된 결과에 가깝다. ...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계속 마음에 남는 이유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선택을 한다. 무엇을 할지, 하지 않을지, 어떤 쪽으로 움직일지를 끊임없이 결정하며 시간을 보낸다. 대부분의 선택은 특별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지나간다. 하지만 가끔은 선택하지 않았던 쪽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 가능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글은 그 선택을 다시 하자는 글도, 후회를 정리하자는 글도 아니다. 다만 왜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실제로 선택한 결과보다 더 오래 머무는지, 그 감각을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선택은 언제나 하나의 길을 확정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다른 모든 길을 닫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체로 선택한 결과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에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한 가능성들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다른 형태로 남아, 특정한 순간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선택은 끝난 사건이지만,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은 계속 현재형처럼 느껴진다. 선택은 결과를 남기지만 가능성은 질문을 남긴다 선택한 결과는 비교적 명확하다. 그 선택으로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정리된다. 반면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은 결과가 없기 때문에 평가할 수 없다. 성공도 실패도 경험하지 않았고, 좋았을지 나빴을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그 가능성은 하나의 질문으로 남는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답이 없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과가 있었다면 감정도 함께 소모되었을 텐데, 가능성은 소모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래서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은 기억이 아니라 가정의 형태로 계속 떠오른다. 그 가정은 현실을 바꾸지는 않지만, 현재의 감각에는 영향을 미친다. 확인되지 않은 상태가 주는 지속성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오래 남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끝까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바쁘지 않은데도 늘 늦었다고 느끼는 감각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어떤 선택은 즉각적인 결과를 남기고, 어떤 선택은 큰 의미 없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선택은 끝났고, 다른 길로 들어섰다는 사실도 분명한데, 선택하지 않았던 가능성은 계속 마음 한쪽에 남아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가능성은 특정한 순간마다 조용히 떠오른다. 이 글은 그 선택을 다시 하자는 글도, 후회를 정리하자는 글도 아니다. 왜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실제로 선택한 결과보다 더 오래 머무는지, 그 감각의 구조를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 선택은 하나의 방향을 확정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가능성을 닫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선택한 결과에 집중한다. 지금의 삶, 지금의 위치, 지금의 상태를 기준으로 선택을 평가한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에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다른 가능성들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명확한 결과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오래 마음속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결과는 끝나지만 가능성은 끝나지 않는다 선택한 결과에는 끝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성공이든 실패든 어느 정도 정리된다. 감정도 함께 소모되고, 그 선택은 과거의 사건으로 이동한다. 반면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은 결과를 갖지 않는다. 잘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고, 경험으로 소모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 가능성은 끝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끝나지 않은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끝난 일보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 더 오래 머문다.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은 바로 이 지점에 머문다. 결과가 없기 때문에 평가도 없고, 평가가 없기 때문에 정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가능성은 질문의 형태로 남는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상태가 주는 지속성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오래 남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끝까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확인된 사실...